2010년 04월 05일
[천하장사마돈나] 소통
지금껏 트랜스젠더의 이미지를 독차지하던 것은 하리수와 같은 지극히 여성스런 신체의 트랜스젠더들이다. 그런데, 이 영화에 등장하는 것은 고등학교 남자교복을 입은 두툼한 체격의 '남학생'이다. 그리고 그는 씨름까지 하고 있다. 전자에선 너무나 여성스런 신체의 이미지가 상대에 대한 의문을 잠시 막고 있었지만, 후자에선 그러하지 못했다. 동구의 교복은 남자 고등학교의 경험을 불러일으켰다. 그리고, 그 경험의 한복판에 동구를 위치시키는 시뮬레이션 버튼을 눌렀다. 시뮬레이션의 결과, 동구와 내가 친구가 되었을 확률은... 1퍼센트 정도. 이미 페미니즘 세미나를 해서 트랜스젠더를 포함한 성적소수자에 대한 차별의 문제를 듣고, 그들의 권리를 존중하는 것이 정치적으로 올바르다고 생각하고 있었지만 그가 친구로 다가오기에는 내가 경험한 '문화'라는 것이 너무 평범했다.(그것이 가장된 평범이었을지라도)
영화를 보면서 공감할 수 있던 것은 동구가 아니라 오히려 전직권투선수이던 그의 아버지이다. 그는 알코올 중독자이고 술에 취하면 동구와 그의 동생을 불러놓고 세상의 잔혹함에 대해 말하면서 "가드올리고 상대의 눈을 주시해"라는 말과 함께 주먹을 날린다. 자신이 다니던 회사에서 해고되었을때는 사장에게 주먹을 날렸다. 그리고, 자신이 트랜스젠더임을 밝히는 아들, 동구에게도 가드를 올리라고 말하며 주먹을 날린다. 영화의 막바지에 씨름대회에 출전한 동구에게 그가 건넨말은, 결국 가드를 올리라는 이야기였다.
그가 분노를 표현하든, 애정을 표현하든 그는 사각의 링을 벗어날 수 없었다. 그가 배운 진실은 링 안의 것이 전부였다. 그리고, 그것은 나의 문제이기도 했다. 그동안 반복해온 소통의 방식들은 여전히 나를 붙잡고 있고, 내가 마주하는 관계 속의 문제들도 반복된다. 동구는 씨름에서 뒤집기를 배웠다. 뒤집기를 배우면 되나?
# by | 2010/04/05 23:59 | 날적이 | 트랙백





